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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

노트북에서 "팬리스"는 값비싼 옵션입니다

by @푸근 2015. 3. 12.

애플이 새로운 노트북 제품을 발표했고, 여기에 인텔의 코어M CPU가 들어간 것을 두고 말이 많더군요. 코어M은 저성능 CPU인데 그것치고는 새 제품의 가격이 너무 비싸다는 주장입니다. 일리 있는 말입니다. 절대적인 퍼포먼스가 낮은데 가격은 매우 비싸니 말입니다. 당연히 나올 법한 비난입니다.

 

 

이번에 새로 나온 맥북. 언제나 그렇듯, 정말 이쁘게 잘 만들었습니다. CPU가 코어M입니다.

 

 

정말 많은 종류의 CPU들

 

그런데 말입니다. 코어M은 원래 그렇게 설계된 CPU입니다. 인텔은 정말 오만 가지 종류의 CPU를 만듭니다. 성능 별로 i7, i5, i3로 구분할 뿐만 아니라 그 밑에 펜티엄, 셀러론이 있고, 각각의 등급마다 클럭 별로 여러 제품이 나뉩니다. 그게 전부가 아닙니다. 오버클럭이 되는 것, 안되는 것, GPU도 여러 가지가 들어갑니다. 이런 저런 조건으로 조합하면 참 엄청난 종류가 나옵니다.

 

여기까지는 데스크탑 CPU에 한정한 겁니다. 여기에 노트북 CPU는 또 따로 있습니다. 소모 전력에 따라 U계열이 있고, Y계열도 있습니다. 물론 그 각각에 또 i7, i5, i3 계열이 따로 있습니다. 엄청나죠. 인텔 직원들은 자기들이 만드는 제품 종류를 다 알고나 있을지 의심스러울 정도입니다.

 

그리고 그 수많은 CPU 중에 코어M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이것은 4.5W의 전력을 소모하는 저전력 CPU입니다. 이 제품은 저 낮은 전력 수준을 맞추기 위해 다른 모든 것을 포기한 CPU입니다. 보통 노트북에 많이 들어가는 U계열의 CPU들도 10W가 넘는 전력 소모를 보이니 4.5W는 정말 낮은 수준입니다.

 

그런데 여기에다 코어M의 성능이 낮다고 비난한다면 뭐 어쩌라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이건 마치 서울가는 버스를 타고서는 왜 부산 안가냐고 따지는 것 같습니다. 어느 정도의 CPU 성능을 바라는지는 모르겠지만 인텔의 제품을 잘 찾아보면 분명 딱 거기에 맞는 CPU를 찾을 수 있을 겁니다. 그럼 그 CPU가 들어간 노트북을 사면 됩니다.

 

 

팬리스라는 옵션을 얻기 위해

 

CPU의 성능은 중요한 성능지표입니다. 하지만 그것만이 중요한 스펙은 아닙니다. 요즘 노트북은 매우 얇습니다. 왜 힘들게 그렇게 만들까요? 얇게 만드는 것도 중요한 디자인 스펙이기 때문입니다. 저전력도 마찬가지입니다. 절대적인 성능은 떨어지겠지만 대신 배터리가 오래갑니다. 그리고 전력을 적게 먹으니 발열이 적습니다. 따라서 팬을 없애버릴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소음이 전혀 나지 않습니다. 팬리스는 CPU 성능을 포기하면서 얻은 아주 비싼 스펙입니다.

 

혹시 일반 PC를 무소음으로 만드려고 생각해 본 적이 있는 분이라면 그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이해할 수 있을 겁니다. 잘 모르는 사람이 보면 미친 짓으로 보일 정도입니다. 무소음으로 만들려면 하드디스크 대신 SSD를 쓰고 팬을 모두 없애야 합니다. SSD는 간단히 해결할 수 있지만 팬은 아주 어렵습니다. PC에서 팬을 없애려면 65W 이하의 TDP를 가진 CPU를 쓰고, 값비싸면도 이상한 모양을 한 거대한 쿨러를 달아야 하고, 절대적인 와트값에 비해 말도 안되게 비싼 팬리스 파워를 써야 합니다. 게다가 타공처리가 된 풀알루미늄 재질 케이스까지 필요할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엄청난 짓을 해서 얻는 것은 더 낮은 성능과 무소음입니다. 무소음은 이렇게 비싼 옵션입니다. 적어도 현재 시점에서는 그렇습니다.

 

이번에 도입된 코어M은 저렴한 CPU도 아닙니다. 이 분야를 잘 모르는 사람들이 보면 이상할 겁니다. 성능도 처참한 녀석이 가격은 엄청 비싸니 말입니다. 이걸 누가 살까 하고 말이죠. 하지만 TDP가 4.5W입니다. 그거 하나 보고 가는 제품입니다. 이 숫자를 보고 배터리는 오래 가겠구나, 발열도 적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는 겁니다.

 

 

삼성의 노트북9 2015에디션. 여기에도 코어M이 들어갔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팬리스가 고급 옵션이라고 해도 성능이 너무 떨어져 부팅하는데 몇 분 걸리고 그러면 안되겠죠. 그래서 저도 직접 매장에 가서 해당 제품을 한참이나 만져봤습니다. 물론 아주 만족스럽지는 않았지만 이 정도면 충분히 감수할 수 있는 수준이라고 판단했고, 코어M이 달린 노트북을 백만원 하도도 수십 만원을 더 주고 구입했습니다. 그리고 한달 가량 사용한 지금은 구입 전에 예상했던 것들이 딱 맞아 떨어져서 기분이 좋습니다.

 

 

가장 먼저 결정해야 할 것

 

노트북을 살 때 가장 먼저 결정해야 할 것은 CPU도, 크기도, 무게도, 배터리 타임도 아닙니다. 그건 내가 이걸로 도대체 어떤 작업을 어떻게 할 것인지입니다. 노트북을 차 안에서도, 지하철에서도 써야 하는지, 아니면 정해진 곳에서 어댑터만 연결해서 쓰는 환경인지, 문서 작업만 하면 되는지, 인코딩을 해야 하는지, 컴파일을 해야 하는지, 캐드를 써야 하는지, 게임전용인지, 뽀대 자랑전용인지.... 등등 이런 것들을 먼저 결정해야 합니다.

 

포터블한 것도 그 수준이 다양합니다. 정해진 곳만 왔다갔다 하는지, 항상 움직이고 있는지, 어쩌다 한번씩만 움직이면 되는지 전부 다 다르고, 해당 조건에 따라 제품의 선택은 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거의 대부분의 경우 어댑터를 쓸 수 있는 환경이라면 긴 배터리 시간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 다음에 해상도와 CPU 수준을 결정하고 여러 후보를 선정하고 선택해야 합니다. 처음에 제품을 구입하면 이것저것 다 할 것같은 생각이 듭니다. 그것은 아직도 자신에게 무슨 일이 중요한 것인지 제대로 생각해 본 적이 없다는 증거일 뿐입니다. 내가 해야 할 작업의 우선순위를 매기고 하위권 작업은 철저하게 무시해야 합니다.

 

앞서 이야기 했듯이, 코어M의 성능은 떨어집니다. 애초부터 그렇게 만들었으니까요. 고성능이 필요한 사람이라면 절대로 선택해서는 안되는 제품입니다. 그러니 쓸데 없는 비난보다는 자신에게 필요한 것이 정확히 무엇인지 한번 더 생각하고 거기에 맞는 제품을 찾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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