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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

내가 신뢰하지 않는 기업들

by @푸근 2018. 11. 5.

무슨 일을 할 때, 원칙과 매뉴얼은 중요합니다. 그것을 새롭게 만들고 더 낫게 발전시키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일단 현재 만들어진 원칙을 지키는 것은 중요합니다. 특히 기업이라면 더욱 더 그러합니다. 이런 원칙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으면 상황에 따라 그때마다 일 처리가 달라지고, 그러면 결과적으로 누구는 더 나은 대우를 받고 어떤 누구는 그렇지 못한 대우를 받게 됩니다. 그래서 규모가 크고 일 처리가 다양한 기업일수록 이런 원칙과 매뉴얼이 세세하게 정립되어 있기 마련입니다.

 

고객의 입장에서도 이것은 중요합니다. 저런 원칙을 잘 지키는 기업은 적어도 나에게 특별대우를 해주진 않더라도 내가 피해 보게 될 일은 없을 것이라고 믿게 됩니다. 반면에 주먹구구식으로 운영하는 기업이라면 내가 운 좋게 특별대우를 받을지도 모르겠습니다만, 결국 그건 다른 어떤 고객의 상대적 피해로 연결될 것이기에, 저는 오히려 그런 기업들을 신뢰하지 않습니다.

 

이런 연유로 저는 가급적 해당 기업이 말하는 원칙과 절차에 최대한 맞추려고 노력합니다. 그 기업이 그런 프로세스를 확립하고 운영한다는 것은 이런 방법에 따라줘야 가장 익숙하고 빠른 일 처리가 가능하다는 의미이기 때문이고 이는 결국 저에게 유리한 방식이 됩니다.

 

하지만 몇몇 이상한 기업들이 있습니다. 자신들이 내세운 방법대로 했더니 오히려 더 손해가 발생하는 그런 경우 말입니다. 이럴 거면 뭣 하러 이렇게 하라는 말을 적어뒀는지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차라리 아무 말도 적지 말고 전화상담 하라고 하든지, 왜 그런 말을 적어두고 그것을 그대로 따르는 고객의 뒤통수치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습니다.

 

#1 모 의자업체

몇 년 전 일입니다. 제가 오랫동안 잘 썼던 의자에 고장이 생겨 AS를 받기로 했습니다. 회사 홈페이지 갔더니 AS게시판에 증상과 연락처를 잘 적어두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사진까지 찍어서 AS신청을 했습니다. 하지만 아무런 연락이 없습니다. 다음 날도 연락이 없습니다. 결국 그 다음 날 직접 전화통화를 해서 AS일정을 잡았습니다. 제가 전화를 직접 할 때까지 게시판 글을 읽어보지도 않았더군요. 저는 괜한 헛수고를 한 겁니다. 그럴거면 도대체 왜 홈페이지에 그런 말을 적어 두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냥 전화하라고 하면 될걸.

 

#2 모 카메라 판매점

얼마 전 카메라를 새로 구입했습니다. 오프라인 가게에서 구입했습니다. 구입 시 받기로 한 사은품 중 하나에 문제가 있어 해당 판매점 홈페이지를 방문하여 게시판에 질문을 남겼습니다. 역시나 이번에도 반응이 없습니다. 이럴 거면 홈페이지에 게시판은 왜 만들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냥 제품소개만 되면 될걸. 전화를 했습니다. 사은품 문제는 간단히 잘 해결되었는데, 홈페이지 게시판에 글 남긴 것은 확인해 봤냐고 물었더니 직원의 답변이 그런 홈페이지가 있냐는 반문이었습니다. 직원도 자기네 판매점 홈페이지가 있는지도 모르고 있었습니다. 한심 그 자체입니다. 직원도 읽어보지 않는 그런 게시판은 왜 만든 건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3 모 가방 제조사

올해 초 구매한 가방에 작은 문제가 생겼습니다. 홈페이지에 갔더니 FAQ가 마련되어 있더군요. AS신청은 게시판에 사진과 연락처를 남기든지 아니면 카카오톡 플러스 친구를 등록해서 신청하라고 두 가지 방법이 친절하게 게시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첫 번째 방법대로 게시판에 사진과 AS신청을 했습니다. 그날 저녁에 답장 메일이 왔으니 이 업체는 그래도 앞의 두 업체보다는 훨씬 더 낫습니다. 하지만 내용은 AS신청은 카카오톡으로만 가능하니 그걸 이용해서 신청하라는 이야기였습니다. 그럼 도대체 홈페이지에 있는 FAQ는 뭡니까? 왜 애써 그런 정보를 일일이 찾아서 그대로 하는 고객을 엿먹이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이런 기업이 AS나 다른 일은 잘 처리할지 의심스럽습니다. 이번 건은 문제가 사소한 것이라 큰 비용이 들지는 않기에 AS를 포기하고 그냥 제가 다른 부품을 구해서 처리하기로 했습니다.

 

단순한 기업의 실수라고 볼 수도 있지만 이런 일이 반복되면 더는 그 기업을 신뢰할 수 없게 됩니다. 차라리 그냥 전화상담 하라고 하든지, 왜 구체적으로 적어둬서 구체적으로 뒤통수치는지 모르겠습니다. 이런 일을 한두 번 경험하면 그 기업에서 하는 말을 더는 믿을 수 없게 됩니다. 정말로 해준다고 말하는 것도 정말 해줄까 의심하게 됩니다. 멀쩡한 고객을 "진상"고객으로 만들게 됩니다.

 

저는 앞에 언급한 세 곳과 다시는 거래할 생각이 없습니다. 다행히도 대안은 넘쳐나는 업종과 품목이다 보니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닙니다. 기업의 서비스가 좋을 수도 나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일관성이 없거나 자기가 한 말을 스스로 뒤집는 것은 그중에서도 최악입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해당 기업의 장점마저도 장점이 아닌 것으로 만들어버리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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