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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계

미국의 야간 보행자 교통사고 사망자 증가 미스터리

by @푸근 2024. 1. 16.

한때 우리나라는 교통사고가 대단히 많이 발생하던 나라였습니다. 그래서 교통사고를 줄여야 한다는 캠퍼인 광고가 TV에도 자주 나왔었습니다. 그러던 것이 점점 줄어서 지금은 이전보다는 훨씬 안전한 교통문화가 자리잡았습니다. 그렇듯, 정책적인 노력과 경험의 축적, 그리고 시민의식의 발전으로 더 안전한 교통환경이 조성되었습니다. 이런 과정은 어찌보면 자연스러운 발전의 궤적으로 여겨집니다.

 

그런데 미국에서는 이와 반대 방향의 변화가 일어났다고 합니다. 교통사고로 사망한 보행자가 감소하기는 커녕 오히려 더 증가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것도 세계적인 현상이 아니라 미국에서만 발견되는 특이한 현상이라고 합니다.

 

 

미국에서 1년간 교통사고로 사망한 보행자의 수를 나타낸 그래프입니다. 가로축은 년도이고, 세로축은 인구 백만 명당 사망한 보행자의 수입니다. 밝은 색 선이 야간에 사망한 보행자를 의미하고, 어두운 선이 주간에 사망한 보행자를 나타냅니다.

 

주간이든 야간이든 1980년도 이후 꾸준한 감소 추세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는 일반적인 패턴입니다. 그런데 대략 2009년을 기점으로 야간 중 사망하는 보행자 수가 가파르게 증가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최근까지 계속 증가하고 있습니다. 주간에 사망하는 보행자는 큰 변화가 없습니다. 도대체 2009년에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요?

 

여기에서 문제는 두 가지입니다. 첫째, 2009년부터 야간 보행자 사망자가 급증했다. 둘째, 주간에도 보행자 사망자가 더 이상 감소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전자의 문제가 워낙 선명하기 때문에 여기에서는 첫번째 문제만 고려합니다.

 

그럼 다른 나라들은 어떨까요? 다른 나라들과 비교한 야간 보행자 사망자 수 통계입니다. 미국은 2009년부터 증가하고 있음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호주, 영국, 캐나다, 프랑스는 미국과 달리 2000년 이후에도 꾸준히 야간 보행자 사망자가 감소하고 있습니다. 완만한 감소세를 일정하게 유지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미국만 뭔가 다른 일이 벌어진 것입니다.

 

여기서 누구나 가장 쉽게 예상할 수 있는 원인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스마트폰입니다. 스마트폰은 2007년에 세상에 처음 등장했고 2009년 미국이면 보편화되던 시기이니 시간대도 일치합니다. 그러니까 사람들이 운전하면서 혹은 도로를 건너면서 스마트폰을 보느라고 주의를 살피지 못해서 교통사고가 증가했다는 가설입니다. 정말 그럴까요?

 

위 그래프는 운전자가 하루 중 어느 시간대에 스마트폰을 가장 많이 이용하는지를 보여주는 그래프입니다. 오후 8시 이후에는 사용 시간이 줄어들기 시작합니다. 그러니까 야간 보행자 사망자가 증가하는 현상과는 맞지 않습니다. 정말로 스마트폰 때문에 치명적인 교통사고가 증가했다면 오히려 낮시간에 사망자가 더 많이 증가해야 합니다.

 

또한, 이 이상한 현상은 미국에서만 일어났다는 점입니다. 스마트폰의 사용이 급증한 것은 전세계가 모두 똑같습니다. 그렇다면 당연히 여러 나라에서 보행자 사망사고가 증가해야 합니다. 하지만 앞서 보았듯이, 영국, 캐나다, 프랑스 등의 나라에서는 이런 현상이 발생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일단 스마트폰은 용의자에서 제외됩니다.

 

이 현상을 소개한 기사에는 2천개가 넘는 댓글이 달렸고, 다양한 가설들이 제기되었습니다. 그중에서 생각해볼 만한 것들을 정리해서 두번째 기사가 작성되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팟캐스트를 원인으로 지목했습니다. 미국에서 팟캐스트가 확산된 것은 2009년부터가 맞다고 합니다. 그리고 실제로 미국은 팟캐스트의 인기가 정말로 높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기존의 라디오와 무엇이 다를까요? 팟캐스트가 운전자의 주의를 산만하게 한다면 아마 라디오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그 다음으로 제시된 것이 LED 헤드라이트입니다. 눈부신 LED 헤드라이트로 인해 운전자의 시야가 가려지고 그래서 보행자 사망사고로 연결된다는 가설입니다. 나름 멋진 가설인데, 이것도 문제가 있습니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야간 보행자 사고뿐만 아니라 야간 차량운전자와 동승자들의 교통사고 사망도 증가해야 합니다. 하지만 실제로 후자는 전혀 증가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가로등의 문제도 지적되었습니다. 가로등이 부족하거나 없는 지역은 확실히 더 위험합니다. 그리고 그 위험은 특히 보행자에게 치명적입니다. 그래서 가로등의 문제는 충분히 설득력 있는 가설입니다. 하지만 이는 쉽게 확인하기 어렵습니다. 2009년부터 갑자기 미국의 가로등 체계가 엉망이 되었다고 해야 이 정도 규모의 통계가 설명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이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사망사고가 발생한 지역까지 모두 조사가 이루어져야 하기에 판단하기 어려운 가설입니다.

 

또 다른 흥미로운 가설은 바로 고령화입니다. 미국도 역시 고령화가 진행되고 있고, 노인 인구가 증가함에 따라 위험 상황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증가하고, 또 고령자일수록 백내장 환자가 많기에 시력의 문제로 사고가 늘어날 수 있다는 가설입니다. 제법 그럴싸하지만 이것이 정답이라면 아마 일본과 한국에서 먼저 이런 문제가 일어났어야 하지 않을까요? 하지만 한국과 일본에서 이런 문제를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실제로 미국에서 발생한 보행자 사망자 증감을 연령별로 나누어 보면 이렇습니다. 2009년부터 증가했는데 그 희생자들은 18-64세 인구집단이었습니다. 65세 이상의 노인들은 오히려 사망자가 감소하였습니다. 그러니 고령화와 백내장이 원인일 것이라는 가설은 이런 자료들로 반박이 됩니다.

 

위 기사에서 마지막으로 제시하고 있는 가설은 보행자의 실제 수가 감소했다는 것과 보행자 중심의 교통문화가 퇴색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두 가지 모두 이 현상의 원인으로 입증하기란 불가능합니다만 충분히 검토할만한 가치가 있는 가설입니다. 보행자의 절대적인 수가 줄어들면 보행자의 안전은 더 낮아집니다. 간단히 사고실험을 해보면, 횡단보도를 한번에 100명이 지나가는 상황과 한명이 지나가는 상황 중 어느 경우에 사고 확률이 더 높을까를 생각하면 됩니다. 실제로 보행자가 매우 적은 외각 지역에서는 자동차들이 더 위험하게 운행하는 모습을 쉽게 관찰할 수 있습니다. 보행자의 수 자체가 줄어들면 치명적 사고의 발생은 증가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이 현상의 원인인지는 이것만으로는 알 수 없습니다.

 

보행자를 우선하는 교통문화는 예전에 우리가 선진국을 따라 배워야 한다고 할 때 자주 언급되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 미국에서도 그런 문화가 약화되고 있나 봅니다. 만약 그렇다면 이것 역시도 보행자 사고 증가의 원인으로 지목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야간에만 그러한 교통문화의 변화가 일어날까요? 이것 역시도 잘 모르겠습니다.

 

기사에서 정확한 원인을 제시하고 있지는 못하지만 사실 위에서 제시된 모든 것들이 조금씩 나쁜 방향으로 영향을 미쳐서 이런 결과가 나온 것일지도 모릅니다. 2009년 이후, 미국에서만 일어나고, 주간이 아닌 야간에만 영향을 미치는 어떤 교통관련 변수를 찾아내는 이 과정은 마치 여러 용의자 중에서 진짜 범인을 밝히는 탐정놀이처럼 보여서 무척이나 관심을 끕니다. 실제로 진짜 범인을 잡아낼 수 있다면 정말로 많은 생명을 구할 수 있는 중요한 일이기도 합니다. 물론 개인적으로 진짜 범인이 궁금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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