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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건

세일러 프로기어 핑크 골드 만년필 구입

by @푸근 2024. 1. 29.

얼마 전 일본 쇼핑몰에서 너무 예쁜 만년필을 하나 마주쳤습니다. 이것저것 다양한 물건을 판매하는 도큐핸즈라는 곳에 전시된 만년필이었습니다. 사진도 찍지 못하게 해서 눈으로만 보고 왔지만 직접 마주한 실물이 너무 예뻐서 한참을 구경했습니다. 그 만년필은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이 만년필은 오로라의 아스틸(Hastil) 한정판 제품입니다. 실물이 사진보다 훨씬 더 화려합니다. 이탈리아의 디자인은 역시나 대단합니다. 화려한 만큼 가격도 높은 편이라 그냥 넋놓고 구경만 했습니다. 사실 돈이 있다 하더라도 이 제품을 구매할 것인지는 계속 주저했을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이 만년필은 저에게 그저 관상용에 불과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정말 이쁘지만 저런 일자형 디자인은 실용성 측면에서 그다지 높은 평가를 하기 어렵습니다. 워터맨의 퍼스펙티브라미의 다이얼로그를 이미 써 본 경험을 바탕으로 내린 결론입니다.

 

사실, 라미의 다이얼로그는 저에게 만년필이라는 취미를 그냥 때려칠까 하는 고민을 하게 만들 정도로 실망감을 준 제품입니다. 디자인은 이쁠지 몰라도, 펜촉이 들락날락하는 기계적 메커니즘이 뛰어나고 아름다울지 몰라도, 만년필로서 실용성은 최악에 가까운 물건입니다. 아무리 만년필이 불편한 필기구라 하더라도 일단 필기구여야 한다는 기본을 잊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걸 선택한 저 역시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무튼 이런 상황에서, 실물로 본 저 오로라의 만년필은 다시 만년필에 대한 관심에 불을 질렀고, 그래서 철저하게 실용적인 기준에 부합하면서도 나름대로 예쁜 만년필 하나를 구입했습니다. 바로 세일러의 프로기어 만년필입니다. 이 라인업에서 이왕이면 21K 금촉이고 아름다운 색상이면서 내가 가지 갖고 있지 않은 색을 가진 제품을 선택했습니다. 그리고 그 제품의 정식 명칭은 세일러 프로페셔널기어 핑크 골드 만년필입니다.

 

DHL로 배송 받았습니다. 국내에서 이 만년필의 가격은 무척이나 높았습니다. 세일러의 프로기어 라인업 중에서 평범한 금장이나 은장 만년필은 그럭저럭 나쁘지 않은 가격으로 국내에서 구입할 수 있는데 이 제품은 국내 가격이 너무 높아서 구매 대행 업체에 주문했습니다. 국내 가격보다는 조금 저렴하게 구입했습니다만, 관세를 미처 생각하지 못해 기대했던 만큼 저렴하게 구입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관세까지 포함해도 국내가격보다는 저렴합니다. 참고로 만년필의 관세는 여러 항목을 합쳐 총 18%였습니다.

 

그리고 놀랐던 것은 일본에서 한국까지 DHL 배송의 속도가 무척 빨랐다는 것입니다. 총 3일 정도 걸린 것 같은데 일본에서 구매, 현지배송, 항공, 통관, 국내배송까지 이 정도에 끝난 것은 참 놀라운 경험이었습니다.

 

만년필이 담긴 상자입니다. 포장이 안전하게 잘 되어 있습니다. 사실 만년필은 대체로 상자 안에 잘 고정되어 있기 때문에 배송이 그렇게 까다로운 물건은 아닙니다.

 

박스입니다. 42000엔이라고 적혀 있는데, 실제 저 가격은 아닙니다. 일본 현지에서도 크게 할인해서 판매하고 있나 봅니다. 바코드 밑에 "11-3017-310"이라는 일련번호가 적혀 있는데 이것이 이 만년필의 고유 상품코드입니다. 유니크한 번호이니 이 숫자로 검색하면 편리합니다.

 

박스입니다. 다른 만년필 회사와 비슷한 포장 방식이고 세일러라는 로고도 한가운데 박혀 있습니다. 전형적인 포장입니다.

 

이전에 구입했던 워터맨의 박스와 비교해보면 세일러의 박스가 조금 더 큽니다. 그리고 가격도 더 비싼 제품이기도 합니다. 두 회사 파란색을 사용했습니다.

 

박스를 열었습니다. 보증서와 설명서 등의 문서가 위에 있습니다.

 

구성품입니다. 만년필 본체, 설명서 및 보증서, 그리고 잉크 카트리지가 2개 들었습니다. 박스 밑바닥에는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컨버터가 보이지 않는데 이런 경우 컨버터가 처음부터 만년필에 장착되어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안에도 컨버터는 없었습니다. 참 씁쓸합니다. 가격을 생각하면 이건 좀 심한 게 아닌가 하는 불만이 생깁니다.

 

기본으로 포함된 잉크 카트리지는 쓸 생각이 없기에 만년필 본체를 제외하고 모두 다시 박스 안으로 봉인되었습니다.

 

만년필 본체입니다. 흰색 바디의 만년필은 이것이 처음입니다. 핑크 골드 색과 잘 어울리고 실제로 보면 정말 예쁘게 생겼습니다.

 

전체 모습입니다. 전통적인 만년필 디자인에 기본을 두면서 색상으로 강조하였습니다.

 

핑크 골드로 세일러라는 이름이 새겨져 있습니다.

 

펜꽂이 부분도 핑크 골드입니다.

 

꼭대기에 세일러의 로고인 닻 모양이 있습니다.

 

똑딱식 뚜껑이 아니라 돌려 끼우는 뚜껑입니다. 확실한 밀봉을 해주니 닙이 마르는 현상이 약화될 것입니다.

 

크기는 이 정도입니다. 일반적인 크기의 커터칼과 비교했습니다.

 

뚜껑을 뒤로 끼우면 이렇습니다. 뚜껑을 뒤로 끼우는 것이 더 편하기는 합니다만 끼우지 않았을 때와 큰 차이는 아니었습니다.

 

닙 부분을 확대한 것입니다. 21K 금촉입니다. 보기에 아주 좋습니다. 21K 금촉이 조금 더 부드럽다고는 말은 하지만 그보다는 그냥 보기에 좋아서 쓰는 겁니다. 그나저나 갤럭시 S23으로 찍은 사진인데 근접촬영이 매우 편리합니다.

 

모두 분리한 모습입니다. 여기에 컨버터든 카트리지든 하나 끼워서 쓰면 됩니다. 만년필은 참 허무할 정도로 간단한 구성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실 만년필의 가격은 그냥 브랜드의 가격이라고 봐도 무방할 겁니다.

 

이 만년필에 끼울 극흑 잉크 카트리지입니다. 많은 분들이 좋아하는 잉크인데 일반적인 잉크와는 성질이 다르다보니 싫어하는 분도 많습니다. 일단 세일러의 만년필에 이 세일러의 극흑 잉크를 써볼 생각입니다. 나중에 몇 가지 블랙 잉크들을 비교한 후에 하나를 선택할 계획입니다. 극흑도 오로라 블랙과 함께 유력한 후보입니다.

 

제가 갖고 있는 다른 잉크 카트리지와 비교했습니다. 크기 순서대로 워터맨, 라미, 파이롯트, 세일러 순서입니다. 카트리지가 컨버터보다는 용량이 많아서 카트리지를 쓰긴 했는데 카트리지가 실제로 컨버터보다 더 편리한 방식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이 기준에서는 둘 다 비슷한 수준이라고 생각합니다.

 

드디어 잉크 카트리지 결착. 이대로 합체해서 쓰면 됩니다.

 

첫 테스트입니다. 여기까지만 쓴 제 결론은 대만족입니다. 지금까지 제가 구매한 만년필 중 가장 좋은 필기감입니다. 그 이유를 생각해 봤는데, MF촉이 가장 중요한 이유이지 않을까 합니다. 이 만년필은 다양한 촉을 선택할 수 없습니다. MF 딱 하나입니다. MF는 F와 M 사이라고 설명하긴 합니다. 실제 제 경험도 F보다는 조금 더 두꺼운 것 같다는 느낌이 듭니다. 그래서 그런지 엄청 부드럽습니다.

 

오로라 한정판 만년필 때문에 어쩌면 반쯤 충동적으로 구매한 제품입니다. 그러나 이 제품의 만족감은 최고입니다. 정말 필기에 좋은 만년필입니다. 당분간은 이 세일러 프로기어가 저의 첫번째 필기구가 되지 않을까 합니다. 그리고 앞으로는 모양만 이쁜 만년필은 이제 구입할 생각이 없습니다. 만년필이 다들 시거 담배 모양처럼 생긴 것은 다 이유가 있었던 것입니다. 이제 문제는 잉크입니다. 극흑 잉크도 좋지만 몇 가지 다른 블랙 잉크를 비교체험 한 후에 결정해야겠습니다.

 

간만에 매우 만족스러운 사치 경험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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