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가난한 모든 사람이 그런 상황을 원해서 그렇게 된 것은 아닙니다. 또한 지금 가난하다 하더라도 그 상태를 벗어나기 위해 큰 노력을 기울이는 사람들 역시 많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노력해서 자수성가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는 교훈을 담은 아름다운 이야기로 회자되곤 합니다.
가난이라는 말은 사실 경제적으로 궁핍한 정도를 의미합니다. 단어 그대로의 뜻에는 경제적 관점에서만 서술되지 다른 것은 언급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다른 조건을 잘 활용하고, 사회적으로 주어진 기회를 잡아서 경제적 궁핍만 벗어나면 가난에서 쉽게 벗어날 수 있는 것처럼 묘사됩니다. 즉, 가난이라는 상태는 오직 경제적 측면에서만 문제가 있고 다른 것은 괜찮은 것처럼 여겨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출처 : http://www.brookings.edu/blogs/social-mobility-memos/posts/2015/02/19-cost-poverty-stress-graham
한달에 2천 달러 미만을 버는 가난한 사람들, 2천~7천5백달러를 버는 중간층, 그리고 7천5백 달러 이상을 벌어들이는 부유층으로 구분하여 비경제적 상태를 비교한 그림입니다. 스트레스, 분노, 슬픔, 근심, 육체적 고통을 조사한 결과 모든 항목에서 가난한 사람들이 더 불리한 상태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간단히 말하면 가난이라는 상태는 경제적으로만 힘든 것이 아니라 정신적, 육체적으로도 힘들다는 것입니다.
가난한 상태를 경험해보지 못한 사람들은 그 실상을 잘 이해하지 못합니다. "고기가 없으면 빵을 먹으면 된다."는 말이 어처구니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고기와 빵이 아닌 다른 대상으로 바뀌면 저 생각에서 한치도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들이 제법 많습니다. 가난은 그 자체로도 힘든 상태이지만 그것으로부터 파생되는 어려운 점도 많습니다. 심지어 가난하면 돈을 더 많이 써야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가난한 상태가 가져오는 스트레스와 걱정, 불안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사람임을 스스로 입증한 사람들만 선별해서 지원해주겠다는 어떤 도지사는 가난한 상태가 무엇인지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임이 분명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유로운 시장에서 개인들이 경쟁하는 모델을 신봉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경쟁에는 반드시 패자가 존재합니다. 따라서 경제적으로 궁핍한 집단이 존재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사회현상입니다. 100명이 시험보면 반드시 1등이 존재하고 꼴찌가 존재하는 것과 똑같은 겁니다. 많은 노력을 하면 내가 꼴찌가 될 가능성이 낮아질 뿐이지 꼴찌의 존재 자체를 없앨 수는 없습니다. 이런 사회적 조건에서 가난한 사람들의 존재가 거슬린다면 그것은 당신이 신봉하는 것이 자유로운 경쟁이 아니라 "나만 아니면 된다."는 것임을 입증해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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