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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계

여전히 더딘 전자책 확산과 한국의 독서 위기

by @푸근 2024. 4. 24.

모든 것이 디지털로 전환되고 있는 요즘 유독 디지털로의 전환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분야가 있습니다. 바로 도서입니다. 전자책이 등장한지는 이미 한참 되었고 유통 플랫폼들도 이젠 어느 정도 교통정리가 된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전자책은 여전히 도서 시장에서 주류가 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다른 말로 하면 전통적인 종이책이 아직도 확고한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그럼 어느 정도 수준인지 자료를 살펴 봅시다.

 

 

이 자료는 2023년 기준 여러 나라별로 종이책과 전자책을 구매한 인구의 비율을 나타낸 그래프입니다. 진한 파란색 막대가 전자책, 흰색 막대가 종이책을 의미합니다. 예를 들어, 왼쪽에서 두번째에 있는 미국의 그래프는 다음의 내용을 의미합니다. 2023년에 미국인의 약 30%가 종이책을 구입한 적이 있으며, 약 20%의 미국인이 전자책을 구입한 적이 있다는 뜻입니다.

 

이 그래프는 전자책 구입 비율이 높은 순서대로 나열되어 있습니다. 가장 높은 중국이 30%에 미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 다음 미국이 대략 20%, 그 이후 일본, 영국, 호주, 스페인, 한국, 독일까지가 10%대, 인도와 프랑스는 한 자리 숫자 퍼센트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전자책이 시장에 등장한 시간을 고려하면 절대 높은 수치라고 평가하기 어렵습니다.

 

반면, 전통적인 종이책은 여전히 높은 비율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종이책이 많이 팔리는 영국이나 스페인을 보면 종이책을 구입하는 사람이 전자책을 구입하는 사람보다 3-4배 더 많다고 볼 수 있습니다. 다른 나라들도 대체로 그러합니다. 종이책보다 전자책이 더 많이 팔리는 중국이 오히려 예외적으로 보입니다.

 

사실, 저도 몇 년 전에 전자책으로 전환을 고민했고 앞으로 구입할 책은 가급적 전자책으로만 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몇 번 해보니 이게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라는 점을 깨달았습니다. 전통적인 종이책이 주는 장점을 무시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기능적으로는 전자책이 더 우수합니다. 검색도 쉽고, 스크랩도 편하고, 무엇보다 집안의 공간을 차지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손에 잡히는 그 어떤 느낌, 책장을 넘기는 손의 감각 등 뭐라 말하기 힘든 어떤 점이 여전히 종이책을 내려놓지 못하게 만듭니다. 그래서 지금은 가볍게 보는 책만 전자책으로 구입하는 편입니다.

 

그런데 위 그래프에서 책을 가장 적게 사는 나라는 어디일까 살펴보니 우리나라가 눈에 들어옵니다. 종이책 부분을 보면 한국과 중국이 비슷하게 꼴찌로 보이는데 전자책까지 고려하면 사실 상, 한국이 가장 책을 적게 구입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한국은 정말로 책을 읽지 않는 나라입니다. 게다가 더 심각한 것은 그나마 안 읽는 편인데, 갈수록 더 안 읽다는 점입니다. 이렇게 말입니다.

 

위 그래프는 <2023년 국민독서실태조사 보고서> 자료에서 가져온 것입니다. 1994년부터 2023년까지 독서율 추이를 보여줍니다. 독서율이란 1년 동안 1권 이상의 책을 읽은 사람의 비율입니다. 그러니까 1994년 대한민국 성인 중 86.8%가 1년 동안 최소 1권 이상의 책을 읽었는데, 2023년에는 성인 중 43%만이 최소 1권을 읽었다는 의미입니다. 정확히 절반이 되었습니다. 우리나라 성인은 책을 정말 읽지 않습니다.

 

책을 읽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책 이외의 다른 매체가 너무 많아졌기 때문입니다. 정보를 얻을 수 있는 다양한 매체들이 공존하니 꼭 책을 고집할 필요는 없어졌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2013년 이후 독서율이 감소하는 정도가 급격히 빨라졌습니다. 이 속도는 줄어들 것처럼 보이지 않습니다. 2013년 이후 자료만 상세히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2013년 이후 대한민국 성인의 독서율 추이를 매체별로 나누어 표시한 자료입니다. 종이책만 따로 보면, 71.4%에서 32.3%로 절반 이하로 줄었습니다. 반면 전자책은 13.9%에서 19.4%로 약간 상승하는 수준에 불과합니다. 그러니 종이책이든, 전자책이든, 소리책이든 간에 모든 종류의 독서는 감소했습니다. 그것도 크게 감소했습니다.

 

정보를 얻을 수 있는 매체가 다양해진다고 했지만 여전히 도서만이 줄 수 있는 정보와 느낌과 논리가 있습니다. 그것을 간단히 3분 요약 유튜브 영상으로 대체할 수 없는 법입니다. 몇 분 되지도 않는 영상 몇 개 보고 책을 읽은 것과 같은 상태에 도달했다고 여기는 것은 바보같은 생각입니다. 원작 소설을 옮긴 영화를 보더라도 원작을 훼손했다, 중요한 부분을 빼뜨렸다, 특정 인물을 누락했다, 맥락을 왜곡했다 등등의 비난이 쏟아지는 것이 흔합니다. 책 한권을 2시간 영상으로 옮겨도 이 정도인데, 몇 분짜리 영상으로 방대한 내용을 대체하는 것은 애초부터 불가능한 것입니다. 그것이 가능하다면 처음부터 책으로 쓰면 안되는 것입니다.

 

책에 담긴 정보가 가장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만, 책이 줄 수 있는 정보를 다른 매체가 대체하기는 여전히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전자책조차도 아직 종이책을 대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런 와중에 독서율 자체가 크게 낮아지는 것은 장기적으로 큰 문제가 될 수도 있습니다. 출판 시장이 축소되고 출판사가 문을 닫는 수준이 아니라 지식과 인식의 레벨에서 특정한 집단적 편향이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이 무서운 상황입니다. 적절하고 충분한 정보 위에서 최선의 판단을 내릴 수 있습니다. 정보 자체가 편향되어 있다면 그것으로부터 얻어진 판단과 결정 역시 편향될 수밖에 없는 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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