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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건

키크론 K8, 실망스러운 키보드

by @푸근 2020. 9. 4.

최근에 갑작스럽게 등장해서 큰 인지도를 얻고 있는 키크론이란 키보드 브랜드가 있습니다. 당연히 기계식 키보드를 생산하는데 이들의 제품 특징은 맥과 윈도우를 모두 지원하고 유선과 블루투스를 모두 지원하며 스위치를 바꿀 수도 있습니다. 당연히 키보드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귀가 솔깃해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이들이 내놓은 제품은 변형된 사이즈의 키보드들이 많았습니다. 제가 선호하는 텐키리스 규격의 제품은 아직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이들이 K8이라는 이름으로 텐키리스 규격의 제품을 출시한다고 했고 블루투스 기계식 키보드를 무척 선호하는 저는 예약을 했고 어제 제품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제 입장에서는 참 실망스러운 제품이었습니다.

 

키보드는 흔들림없이 묵직해야 한다고 생각하기에 당연히 알루미늄 제품으로, 그리고 스위치를 제가 좋아하는 카일 박스 화이트로 변경할 생각이니 핫스왑이 지원되는 제품을 골랐습니다. 즉 K8 라인업에서 가장 비싼 제품입니다.

 

 

박스는 참 고급스럽습니다. 첫인상은 참 좋습니다.

 

 

 

텐키리스(TKL) 키보드입니다. K8이라고 해서 이 회사의 8번째 제품은 아닙니다.

 

 

 

후면에 핵심기능이 정리되어 있습니다. 텐키리스 레이아웃, 맥와 윈도우 "완벽" 지원, 유무선 지원이 핵심적 기능입니다. 마지막에 있는 긴 배터리, 광원효과는 서로 상충되는 조건이라 동시에 만족되지 않습니다. 긴 배터리를 원하면 광원효과는 꺼야 합니다. 저는 당연히 끄고 쓸 생각이었습니다.

 

 

 

기본적으로 맥 운영체제에 맞도록 키가 설치되어 있습니다. 윈도우에서 쓰려면 위 그림처럼 키를 바꾸라고 합니다. 여분의 키캡도 함께 들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게 "완벽"하게 지원하지는 않습니다. 윈도우에서 오른쪽 부분은 메뉴키가 있어야 하는데 위 그림에는 윈도우 키가 두 개 있습니다. 실제로도 그렇게 작동합니다.

 

설명서에는 키매핑 프로그램을 이용할 수 있다고 명시되어 있지만 오른쪽 윈도우키를 메뉴키로 바꾸지는 못했습니다. 이렇게 키 하나가 낭비되었고 "완벽" 지원이란 말은 무색해집니다.

 

 

 

설명서가 있습니다. 한장으로 요약된 설명서도 있는데 이게 또 있습니다. 친절한 것은 좋은 것이죠.

 

 

 

투명 플라스틱 키보드 덮개도 있습니다. 키보드 여러 개 두고 바꿔가면서 쓰시는 분들에게는 유용한 물건입니다. 그런데 박스에서 본체를 꺼내면서 놀랐습니다. 난 분명히 알루미늄 제품을 주문했는데 너무 가벼웠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처음엔 제품이 잘못 온 줄 알고 한참을 살펴봤는데 알루미늄 제품이 맞습니다. 전체가 알루미늄이 아니라 테두리에만 알루미늄이 둘러져 있습니다. 사실 여기서 약간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방향키 윗부분에 LED 표시등이 있습니다. 충전상태와 블루투스 연결상태를 알려줍니다.

 

 

 

왼쪽 옆에 버튼이 있습니다. Type-C 유형의 연결단자와 윈도우/맥 모드 선택 버튼, 그리고 블루투스/유선 선택 버튼이 있습니다. 아래 적힌 글자가 너무 작긴 하지만 쓰는 데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오른쪽 윗부분입니다. 또 문제가 되는 곳입니다. 원래 저 자리는 Scroll Lock 키와 Pause/Break 키가 위치하고 있는 곳입니다. 그런데 키크론 K8은 저 자리에 시리/코타나를 호출하는 버튼과 RGB 조명을 켜는 버튼을 놓았습니다.

 

그럼 저 마이크 그림이 그려진 키를 누르면 윈도우 10의 코타나가 호출되는가? 예 그렇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코나타 서비스가 지원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저걸 누르면 서비스가 지원되지 않는다는 창만 덩그라니 나옵니다. 이렇게 또 하나의 키가 쓸모없어져 버렸습니다.

 

그리고 RGB 광원도 그렇습니다. 블루투스로 연결해서 쓰려면 조명을 끄는 것이 좋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계속 충전해야 하고 그럴거면 그냥 유선을 쓰고 말죠. 그래서 Fn와 저 키의 조합으로 조명을 완전히 꺼버립니다. 그러면 이제 저 키는 아무런 쓸모가 없어집니다. 이렇게 또 하나의 키가 사라져 버린 셈입니다.

 

 

 

함께 동봉된 키캡 리무버와 스위치 리무버입니다. 이걸 쓰면 좋겠지만 어째 느낌이 점점 안 좋아집니다. 키를 바꿀 이유도 사라져버릴 것 같은 느낌입니다.

 

 

 

이 한장의 설명서에 모든 기능이 다 정리되어 있습니다. 이런 점은 참 좋습니다. 6번에 보면 윈도우에서는 SharpKeys라는 소프트웨어로 키를 다시 맵핑할 수 있다고 했는데 안되는 것이 여럿 있었고, 이미 쓸모 없어진 키들을 다시 살려내지 못했습니다.

 

 

 

스위치를 교체할 때 이런 상황을 조심하라는 안내문이 동봉되어 있습니다. 이 회사는 참 친절합니다.

 

 

 

드디어 전체 모습니다. 여기에서도 문제점이 있습니다. 바로 Fn키와 F키들의 조합입니다. 이것이 좀 많이 이상합니다. 맥 쓰시는 분들을 정말 이렇게 쓰는지 궁금합니다.

 

  • Fn+F1과 F2는 밝기 설정입니다. 노트북이 아니면 무의미한 키입니다.
  • Fn+F3은 열린 창 목록을 보여줍니다. Win+Tab과 동일합니다. 이미 더 익숙한 키조합이 있는데 이걸 왜 써야 합니까?
  • Fn+F4는 탐색기를 열어줍니다. 이것 역시 Win+E라는 키조합이 이미 있습니다.
  • Fn+F5와 F6은 RGB조명 밝기인데 블루투스 쓰면 어차피 꺼둡니다.
  • Fn+F7, F8, F9는 멀티미디어 재생 기능인데 보통 이 키는 연결된 곳에 두지 않나요? (현재 쓰고 있는 아콘 키보드는 F5678에 배치되어 모두 연결되어 있습니다.) F8과 F9 사이게 간격이 떨어져 있는데 굳이 여기에 이렇게 배치한 이유가 뭔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 Fn+F10, F11, F12는 음량 조절 및 음소거입니다. 그나마 가장 많이 쓰는 기능입니다만 위치가 좋지 않습니다. Fn키와 함께 누르려면 편리한 위치가 아닙니다. 결국 그나마 가장 많이 쓰는 기능이 가장 불편한 위치에 있습니다.

 

제 활용 습관에서는 황당할 정도로 쓸모가 없는 기능키가 되어 버렸습니다.

 

 

 

지금 제가 쓰고 있는 아콘 키보드와 비교했습니다. 아콘 키보드는 유선이라는 점만 제외하면 제가 좋아하는 모든 특징을 갖춘 키보드입니다. 반면에 키크론 K8은 무선을 지원할 뿐 모든 면에서 아콘 키보드보다 더 나은 점이 없습니다. 적어도 윈도우 환경에서는 그렇습니다.

 

 

 

키캡 높이 비교입니다. K8은 일반적인 키캡이고 아콘은 로우 프로파일 키캡입니다. 일반적인 키캡이 나쁜 건 아니지만 RGB가 잘 보이진 않더군요. 저는 개의치 않지만 RGB를 좋아하시는 분들이라면 약간 어색합니다. 예쁜 조명 켜두고 큰 뚜껑으로 덮어버려 그것이 잘 보이지 않게 되기 때문입니다. 높이가 낮은 키캡을 적용했더라면 조명이 더 예쁘게 보였을 겁니다.

 

사실 키캡의 진짜 문제는 너무 싸구려 느낌이 난다는 것입니다. 미끌미끌하고 약간의 기름에도 번들거립니다.

 

 

 

함께 구입한 라이트 그레이 전용 키캡입니다. 키캡의 품질까지 확인하고 나서 이건 아예 열어보지도 않았습니다. 전용키가 많아서 써먹을 곳도 그렇게 많지도 않는데 안타깝습니다.

 

 

 

역시 함께 구입한 전용 팜레스트입니다. 오른쪽 하단에 키크론이라는 마크가 부착되어 있습니다. 이런 건 좋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전용 팜레스트가 키보드 높이와 맞지 않습니다. 이게 무슨 전용입니까? 텐키리스 규격은 이미 표준적이기 때문에 가로 크기는 그냥 기성제품을 사도 딱맞습니다. 전용제품이라고 딱지까지 붙였으면 이런 것도 좀 맞춰주면 좋았을텐데 아쉽습니다. 참고로 저는 기성제품을 사서 바닥에 미끄럼방지 범폰으로 높이를 딱 맞춰두고 쓰고 있었습니다. 그다지 어렵지 않습니다. 다이소에만 가도 다양한 제품들이 널려 있습니다.

 

 

 

이것저것 맘에 안드니 이젠 오만가지가 다 눈에 들어 옵니다. 테두리 부분이 알루미늄인데 아귀가 딱 맞지 않습니다. 이 제품이 맘에 들었다면 이 부분은 아마 제가 알아채지도 못했을 것 같습니다. 지금 제 상태가 이렇습니다.

 

 

키크론 K8이란 제품은 나쁘지 않은 제품입니다. 그건 저도 인정합니다. 유선으로 맥 환경에서 쓴다면 매우 만족스럽게 쓸 수 있는 제품일 겁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윈도우도 "완벽" 지원한다고 표시한 건 말이 좀 심한 겁니다. 윈도우에서는 쓸 수 없는 키 낭비가 많고, Fn키를 조합한 기능은 거의 무용지물입니다.

 

저는 맥을 쓰진 않습니다만 맥 사용자에겐 권장할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윈도우에서는 확실히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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