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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

아! 결국 트럼프로군요

by @푸근 2016. 11. 11.

결국 트럼프였습니다. 미국 대선에 대한 이야기는 이 블로그에서도 여러 차례 다룬 바 있습니다. 저 역시 다른 여러 매체들처럼 힐러리 클린턴의 승리를 의심해 본 적이 없을 정도였습니다. 그래서 이번 결과가 무척이나 충격적입니다. 물론 미국의 힐러리 지지자들만큼까지는 아니겠지만요.

 

많은 분들이 이런 저런 분석을 내놓습니다. 백인남성의 승리라는 말도 맞고, 민주당의 표가 더 적게 나왔기 때문이라는 주장도 타당하다고 봅니다. 하지만 역시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힐러리 클린턴이 쉽게 이길 것이라고 예상했던 몇몇 주들의 역전입니다. 위스콘신, 미시건의 예상치 못한 패배와 경합주였던 아이오와 및 오하이오의 패배가 결정타였습니다.

 

그런데 이 지역은 언론에서 러스트 벨트(Rust Belt)라고 부르는 지역입니다. 오랜 역사를 가진 제조업이 몰락한 지역입니다. 몰락한 도시의 상징과도 같은 디트로이트가 바로 이 지역에 있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런 공장에서 일하던 노동자들은 대체로 고졸이하의 백인남성들입니다. 그들의 분노가 이번 선거를 뒤집어 버린 겁니다.

 

사실 힐러리 클린턴은 크게 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총득표는 도널드 트럼프보다 더 많습니다. 힐러리가 진 경합주에서도 차이는 5%가 넘지 않을 정도로 작습니다. 선거인단이라는 낡은 제도가 작은 차이를 크게 만들어버린 것에 불과합니다. 따라서 인구구성에서 미국의 주류인 백인남성 집단의 변화는 결과적으로는 엄청난 차이를 가져와 버린 셈입니다.

 

문제는 그 백인남성들이 선택한 트럼프라는 인물은 올바르지 못한 사람이라는 점입니다. 공화당마저 버린 그런 사람입니다. 각종 망언과 성추행, 인종차별, 과학적 무지 등 도무지 정상적이라고 여길 수 없는 그런 사람입니다. 아무리 힐러리가 싫다고 해도 그따위 후보를 대안이라고 선택한 것이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을 뿐입니다. 혹자는 트럼프에 대한 조롱과 비아냥이 반발을 불러왔다고 하지만 저런 발언을 일삼는 사람에게 그럼 어떤 대우를 해줘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인종차별주의자와는 토론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는 오히려 조롱과 비아냥이 충분하지 못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합니다.

 

트럼프는 평생 자신만을 위해 살아온 사람이었고, 적어도 그점에 대해서는 매우 성공적인 인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선거 역시 공화당이 아닌 자신만의 싸움으로 만들어버렸죠. 또 그는 일반적인 기업인이 아닙니다. 그의 전문영역은 부동산입니다. 거대한 조직을 안정적으로 운영해야 하는 그런 CEO와도 거리가 먼 경력입니다. 그런 이가 과거의 영광에 매어 사는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무얼 해줄 수 있을까요? 당장 법인세를 낮추고 상속세를 폐지하겠다는 사람인데 말입니다.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습니다. 그는 남을 위해 특히 가난한 사람들 위해 기여한 적이 없습니다. 그런 사람이 지금부터 잘 하리라는 희망은 헛된 망상일 뿐임을 우린 이명박을 통해 잘 알고 있습니다.

 

NAFTA와 FTA같은 자유무역이 러스트 벨트 지역에 큰 타격을 가져왔다는 분석은 타당합니다. 그래서 TPP를 지지하는 힐러리 클린턴은 그 지역 사람들에게 인기가 없다고도 지적합니다. 지극히 타당합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TPP가 뭔지 이해하고 그것의 영향까지도 판단할 수 있는 이성적인 유권자가 도대체 왜 트럼프를 선택합니까? 그래서 저는 저런 분석을 그다지 신뢰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감정적인 선택을 했고 그것에 대한 적당한 핑계를 생각했을 뿐입니다.

 

트럼프는 자신이 공언했던 것처럼 인종차별과 성차별을 방관할 것이고, 이민자들을 배척할 겁니다. 부자와 대기업들에게는 이전과 다른 방식의 기회가 생길지 몰라도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파이가 별로 돌아가진 않을 겁니다. 멕시코와의 국경에 큰 장벽을 세운다고 했고 거대한 토목사업도 할 겁니다. 하지만 그는 비즈니스가 무엇인지 잘 알고 있는 유능한 기업인입니다. 4대강을 했던 이명박처럼 말입니다. 그럼 과거의 영광만 남은 초라한 백인남성들에겐 무엇이 주어질까요? 아마 혐오하는 대상을 맘껏 욕하고 위협할 수 있는 기회 정도는 갖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사람은 가끔 머리를 쓰긴 합니다만 기본적으로 감정의 동물입니다. 그래서 맘대로 욕하겠다는 주장에 손을 들어줬고, 그 주장이 창피하니까 여론조사에는 트럼프를 지지한다는 말을 하지 않을 정도로 똑똑합니다. 민주당 지지자도 마찬가지입니다. 힐러리가 비호감이라고, 맘에 안든다고 투표 안한 것 역시 감정적 선택입니다. 선택이 감정적이었다는 것이 그렇게 심각한 문제라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감정은 인간에게 있어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그것이 감정적이든 아니든 간에 자신의 결정에는 책임감이 있어야 합니다. 투표할 때는 대충 저질러놓고 나중에 가서 이럴 줄 몰랐다고 말하는 사람을 저는 제일 싫어합니다. 자라리 입 꽉 다물고 아무말도 안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때가서 예전처럼 "Sorry"라고 말하는 SNS 유행이 다시 돌아오면 무척이나 열받을 것 같습니다.

 

트럼프의 승리가 보여주듯이, 인간은 감정의 동물입니다. 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젠장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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