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통계

미국의 기업 규제와 벌금

by @푸근 2014. 9. 3.

규제라는 말이 우리나라에서는 마치 장애물과 같은 것처럼 여겨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규제는 일종의 규칙입니다. 규칙이 없어지면 게임이 난장판으로 변하는 것은 순간입니다. 규칙이 적절한가를 따지는 것은 올바른 것이지만 규제를 무조건 없애려고 드는 것은 무법천지를 만들겠다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그런 무법천지가 되면 보통 힘있는 애들이 유리해지죠. 그런 힘있는 애들은 대체로 기업들, 그것도 대기업들입니다.

 

기업하기 좋은 나라라는 말이 기업을 위해 국민이 희생하는 이상한 논리로 변질된 우리나라에서 기업을 규제하는 일은 점점 더 어려운 일이 되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국가기관이 특정 기업의 손실을 막기 위해 온몸을 던지는 정신나간 일이 실제로 벌어지도 합니다.

 

그럼 자본주의 최고 선진국인 미국은 어떨까요?

 

 

 

두 개의 그래프가 있습니다. 먼저 왼쪽부터 봅시다. 이 그래프는 미국에서 기업에서 부과된 벌금의 총액이 증가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2000년대 초반에는 10억 달러 될까말까한 수준의 벌금이 부과되었지만, 2014년에는 무려 120억 달러를 넘었습니다. 어마어마한 상승입니다. 그럼 미국 기업이 10년보다 엄청나게 많은 범죄를 저지르고 다니는 걸까요? 경쟁이 치열해지면 부정행위가 증가하기도 합니다만, 이 상승세는 그런 것으로 설명하기는 어렵습니다. 이렇게 벌금이 늘어난 것은 정부기관이 더 엄격한 기준을 적용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와는 방향이 다릅니다.

 

구체적인 범죄행위를 봐도 우리랑 확연히 다른 게 하나 있습니다. 뇌물(Bribery)이 차지하는 항목이 매우 작다는 점입니다. 미국은 로비가 합법이라서 그런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2013년만 유독 환경문제로 인한 벌금이 크게 잡힌 것은 아마도 BP의 원유유출 사태로 인한 벌금이 저때 부과되었던 것으로 짐작됩니다.

 

미국에서 기업에 대한 벌금이 급격히 증가했다는 것이 결론인데,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요? 그것에 대한 내용이 오른쪽 그래프 내용입니다. 오른쪽 그래프는 기소를 유예하거나 불기소하는 조건으로 합의에 이른 사건의 수(연한 파란색)를 보여줍니다. 미국의 검사들은 우리나라와 달리 법정에서 재판하는 대신 서로 합의를 하는 것이 법적으로 허용되어 있고, 이를 자주 활용합니다. 재판은 오래 걸리거든요. 아마 미드에서도 간혹 등장하는 장면이기도 할 겁니다.

 

아무튼, 검사가 기소하거나(진한 파란색), 재판으로 감옥에 가는(빨간색) 경우는 다소 늘거나 들죽날죽했지만, 합의한 경우는 2007년부터 크게 늘었습니다. 즉, 기업이 문제를 일으켜 수사를 받으면 검사와 벌금내기로 합의하는 경우가 늘었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왼쪽 그래프처럼 기업에게 부과된 벌금이 엄청나게 늘어난 겁니다.

 

어떤 방식이든 간에, 미국에서 기업에 대한 규제가 강화된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원글에서도 지적하고 있듯이, 이런 방식은 좋은 방법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검사와의 합의는 그때그때마다 달라질 수 있어서 일관된 법적용이 쉽지 않고, 무엇보다도 제대로 된 기록이 남지 않아서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겁니다. 어디까지가 허용되는 활동이고 어디까지가 규제대상인지 그 경계를 확실하게 해야 하는데 기록이 남지 않으면 이것이 쉽지 않습니다. 그 사건 하나만 해결할 수 있을 뿐이지요. 앞으로 기업들이 나쁜 짓 하지 않고 올바르게 활동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그래도 미국의 규제당국은 적어도 기업 편은 아닌가 봅니다. 그게 어딥니까?

댓글